스마트폰, 멸종과 진화 통해 최적화
  • 2016-04-12
  • 김언한 기자, unhankim@elec4.co.kr


컴퓨터가 CES(국제 가전 박람회)에서 밀려난 것은 오래 전이다. 대신 컴퓨터 기능과 휴대전화가 결합된 스마트폰이 자리를 꿰찼다. 스마트폰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있지만 아직까진 건재하다. 기술 평준화로 인해 보급형 핸드폰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핸드폰 산업에서 가장 큰 이슈는 FBI(미국연방수사국)와 애플간 아이폰 공방이다. FBI는 샌버너디노(San Bernardino) 총기 테러범의 아이폰에 담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애플이 잠금 해제를 도와줘야 할 것을 명령했지만 애플이 이를 거절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FBI 요구에 응해야 할지에 대한 국제적인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인간 삶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를 신화로 만든 스마트폰은 언제 최초로 출현했을까. 무엇이 스마트폰을 스마트폰으로 만드는지, 초기 모델은 무엇이었는지, 스마트폰의 진화를 내다보자.

 
스마트폰 시초 ‘사이먼’
스마트폰의 역사는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개발된 IBM의 사이먼(Simon)이다. 당시 ‘스마트폰’으로 불리진 못했지만 최초의 스마트폰 개념이 적용된 핸드폰으로 오늘날 평가받는다. 199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컴퓨터박람회 ‘컴덱스(COMDEX)’에 전시된 후 1993년부터 미국 기업 벨사우스(BellSouth Corporation)를 통해 판매되기 시작했다. 2년 약정 조건으로 899달러에 구입할 수 있었다. 약정 없이 구매할 경우엔 1,099달러였다. 당시 한국돈으로 대략 130만 원에 구매할 수 있었던 셈이다.
사이먼은 달력, 주소록, 계산기, 메모장, 이메일, 팩스 기능 등 오늘날 스마트폰과 유사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화를 하기 위해 버튼을 누르는 대신 텍스트 입력을 할 수 있는 온-스크린 키보드와 검색을 위한 단색 터치스크린을 탑재했다. 또, 팩시밀리와 메모를 수행하기 위해 부가적인 스타일러스펜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기술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고급 기능이었다.
1시간 사용 뒤엔 재충전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대략 50,000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된다.


후속주자 ‘9000 커뮤니케이터’
뒤이어 출시된 제품은 노키아(Nokia)의 ‘9000 커뮤니케이터(9000 Communicator)’다. 1.5인치 두께, 397g 무게로 1996년 출시됐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평균 무게가 120 ~ 140 g인 것을 감안하면 3배 정도 더 무겁다.
덮개를 열면 덮개부에 단색 디스플레이, 받침 부분에 쿼티 배열의 키보드가 위치하고 있었다. 쿼티 배열의 키보드란 문자열 Q, W, E, R, T, Y가 왼쪽 맨 윗부분에 오는 표준 배열식 키보드를 말한다. 오늘날 전자사전을 연상하면 된다. 터치스크린은 제공하지 않았다.
9000 커뮤니케이터는 이메일, 팩스, 웹브라우징, 스프레드시트까지 할 수 있었지만 사이먼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스마트폰으로 불리진 못했다.
‘스마트폰’이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1년 후다.
에릭슨(Ericsson)이 1997년 ‘GS 88’을 소개하면서 최초로 사용됐다. 디자인은 9000 커뮤니케이터와 유사했지만 내부에 터치스크린을 장착했다.
PDA, 핸드폰 기능과 결합
뒤이어 2000년을 전후로 PDA와 전화 기능을 융합한 핸드폰 출시의 붐이 일었다. 교세라는 ‘pdQ-1900’을 내놨다. 핸드폰 하단부 연결 이음새를 통해 다이얼패드를 아래로 열고 접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넓은 터치스크린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팜(Palm)OS로 구동됐다.
팜은 미국 쓰리콤(3COM)사가 개발한 휴대 정보 단말, 팜 시리즈에서 채용하고 있는 운영체제다.
에릭슨은 ‘R380’를 공개했으며 교세라 역시 ‘교세라 6035’를 출시했다. 모두 길쭉한 모양의 핸드폰이었다. 오늘날 블랙베리사(社)의 전신인 리서치인 모션도 이에 가세했다. 1999년 출시된 최초의 블랙베리 단말기 ‘블랙베리 850(BlackBerry 850)’이다. 양방향 무선 호출기(Pager, 삐삐)와 유사했지만 기능적으론 무선 호출기 이상이었다.
AA배터리 두 개로 구동됐다. 당시엔 오늘날 스마트폰의 시초라고 일컬을 수 있는 몇몇 기기들이 출시됐지만 사용 대상은 대부분 기업체 간부들이었으며 일반 소비자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양한 폼팩터의 황금기
2000년에서 2006년까지는 다양한 폼팩터의 핸드폰이 출현한 황금기였다. 시장 성장 가능성을 내다본 핸드폰 제조업체들이 대중화를 위해 실험적인 제품들을 다수 선보였다. 스마트폰 운영체제 역시 이메일, 팩스, 웹브라우징, 엔터프라이즈 등을 지원하며 본격적인 시장 개화를 준비했다.
슬라이딩 키보드(키보드가 밀려나오는 형태), 회전하는 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가 위쪽에 위치한 웨이퍼 스타일, 전자사전식 키보드, 멀티플 키보드가 출현하게 됐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상징이 된 저항 접촉식 터치스크린도 나왔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운영체제 역시 손가락 움직임을 완전히 지원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시기 팜, HTC, HP, 리서치인모션, 삼성, 노키아, 모토로라, 오디오복스(Audiovox)와 같은 업체들은 제품 출시를 통해 독자적인 브랜드 구축에 주력하게 된다.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로는 심비안(symbian), 블랙베리OS, 팜OS, 그리고 윈도우 모바일(당시 ‘PocketPC 2000’으로 알려졌다)이 주로 사용됐다.


핸드폰 기술 시장 성숙
2000년대엔 HP의 ‘아이팩(iPAQ)’에 뒤이어 모토로라의 ‘모토 Q’, ‘HTC의 유니버셜(Universal)’·‘왈라비(Wallaby)’·타이탄(TyTN)’, 삼성의 ‘SPH-i700’·‘블랙잭’, 오디오복스의 ‘PPC 6600’ 등 주목받는 제품이 출시됐다.
당시 가장 많이 활용된 운영체제는 심비안과 팜OS였다. 심비안을 채택한 대표 모델 ‘노키아 N95’가 주목받았다. 팜 OS 역시 팜사(社)의 제품 뿐 아니라 소니, 삼성, 에이서, IBM 등으로부터 제품에 대거 채택됐다.
이 시기 가장 인상적인 스마트폰 중 하나는 데인저(Danger)의 사이드킥(Sidekick)이다. 쿼티 자판에 슬라이딩 디스플레이 방식을 채택했다. 디스플레이 부분을 밀면 아래 키보드가 나타났다. 자바(java) 기반의 데인저OS와 빠른 텍스트 메시지 전송을 강점으로 갖추고 있었다. 오늘날 MSN 혹은 야후메신저처럼 그 시대의 ‘인스턴트 메시징 클라이언트’였다.
리서치인모션의 제품은 2004년 이후부터 미국에서 급속히 보급됐다. 따라서 블랙베리를 스마트폰의 원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리서치인모션은 2013년 ‘ BB10(BlackBerry 10)’ 출시 이벤트에서 자사 스마트폰과 사명을 동일하게 바꾸게 된다. 블랙베리사(社)의 탄생이었다.
블랙베리는 2013년까지 전세계에서 8,5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했지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점유율 확대에 밀려 2014년 말 이후엔 4,600만 명까지 떨어졌다.
스마트폰, 사용자 편의성 실현
스마트폰은 본래 기업용 목적으로 장소에 상관없이 비즈니스를 원하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PC 인터넷 편의성에 익숙해진 사용자와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핸드폰 운영체제가 맞물리면서 장소에 상관없는 인터넷 사용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다. 대중들은 어디서든 핸드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활용하기를 원했다.
이를 토대로 2004년부터 2007년 사이 핸드폰 보급량은 급속히 확산됐다. 블랙베리 ‘8700’, '참(Charm) 시리즈, 삼성의 블랙잭, 팜 트리오(Treo), 모토로라 Q 등이 출시됐다. 서드파티가 개발하는 애플리케이션과 게임 시장이 성장하며 소프트웨어가 유저 친화적으로 변해갔다.
핸드폰 제조업체 역시 더욱 강력해진 스마트폰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반 사용자들이 핸드폰으로 이메일,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애플이 있었다.
아이폰 출시
애플은 2007년 6월 아이폰을 출시했다. 기존의 모든 스마트폰 틀을 바꿨다. 애플의 혁신은 이전 스마트폰들이 가졌던 웹브라우징, 이메일에 파워풀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아이폰은 상대적으로 커다란 컬러 디스플레이와 손가락 터치에 최적화된 유저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다.
기존 핸드폰과 달리 전면부에 하나의 버튼(홈 버튼)만을 탑재한 것도 혁신이었다. 엣지 부분에는 버튼 3개를 탑재했다. 사운드 크기 조절을 위한 버튼 2개와 전원/대기모드 버튼 1개다. 이를 통해 몸체를 통한 동작을 최소화했다.
아이폰 운영체제인 ‘iOS’는 기본적인 수준이었지만 인터페이스는 현재와 유사했다.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었다. 뒤이어 HTC사의 터치(Touch), 터치 프로(Touch Pro)가 나왔다. 사용자 친화적인 윈도우즈 모바일로의 시도였다.
OS, 2강 체제로
2009년에는 아이폰 ‘3GS’, 윈도우즈 모바일로 구동되는 HTC의 ‘터치 프로2’·‘HD2’, 삼성 ‘옴니아 II’, 안드로이드 기반의 ‘HTC 히어로’, 모토로라의 ‘클릭(CLIQ)’·‘드로이드(DROID)’, 삼성 ‘갤럭시’ 등 기술적으로 진화한 스마트폰이 출시됐다.
더불어 스마트폰 운영체제에도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팜(Palm)은 2009년 가넷(Garnet)OS, 웹OS(webOS), 팜Pre를 발표했다.
팜OS는 당시 7개의 주요 모바일 운영체제(심비안, 블랙베리OS, 팜OS, 윈도우즈 모바일, 웹OS, iOS, 안드로이드) 중 하나였지만 신형 스마트폰 시장에서 주목 받지 못해 2010년 4월 HP에 인수됐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주력 사업을 윈도우즈 모바일OS에서 윈도우즈 폰7 OS로 전환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 중 상당한 시장을 가졌던 심미안 역시 201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윈도우즈 모바일도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시장을 대체한 웹OS(webOS), 윈도우즈 폰 때문이었다. 블랙베리OS 이용 역시 급감했다. 대신 안드로이드와 iOS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형태의 완성
iOS와 안드로이드는 시장 잠식을 통해 다른 운영체제의 멸종을 불러왔다. 또 이는 다양한 폼팩터를 가진 제품들의 공멸로 이어졌다. 키보드를 갖춘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도 급감하기 시작했다. 대신 터치스크린이 대세로 떠올랐다.
HTC의 ‘히어로’·‘드로이드 인크레더블(Droid Incredible)’·‘이보 포지(EVO 4G)’, 모토로라 ‘드로이드X’, 구글 ‘넥서스원’과 같은 기기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블랙베리는 자판과 풀 터치스크린 기능이 모두 지원되는 토치(Torch) 같은 제품으로 실험을 계속했지만 시장의 판도를 바꾸진 못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아이폰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
2009년 출시된 스마트폰 다수는 오늘날 출시되는 스마트폰의 원형이다. 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역시 2009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인해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이용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스마트폰은 가까운 미래 지금의 형태를 바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멸종과 진화의 역사를 통해 인간 손에 최적화된 형태를 갖추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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