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강남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 혈액 속 '대사의 지도' 분석, 대장암 진행 원리 규명
혈액 한 번의 검사만으로 대장암 환자의 재발과 전이 위험을 기존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KAIST(총장 배충식)는 의과학대학원 이지민 교수와 화학과 김현우 교수 공동 연구팀이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과 공동연구를 통해 혈청 순환 아미노산(Circulating Amino Acids, 혈액 속을 순환하며 몸의 대사 상태를 반영하는 아미노산) 네트워크를 분석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고 7월 22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몸 전체의 대사 체계가 재편된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환자의 재발과 전이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분석 전략을 제시했다.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혈액 속 대사물질들의 연결 구조, 이른바 ‘대사의 지도’가 체계적으로 재편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변화를 활용해 기존 혈액검사보다 대장암 환자의 재발과 전이 위험을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새로운 분석 기술을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암세포는 성장과 증식을 위해 많은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 그중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만드는 재료일 뿐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하고 DNA를 합성하는 등 암세포의 생존과 증식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특히 대장암은 이러한 아미노산 대사가 크게 변화하는 대표적인 암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종양 조직에만 머무르지 않고 혈액 속에도 나타난다. 따라서 혈액 속 아미노산은 몸 전체의 대사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사 바이오마커(Biomarker, 생체지표) 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개별 아미노산의 농도가 얼마나 변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미노산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함께 변화하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소량의 혈청만으로 18종의 순환 아미노산을 동시에 정밀 분석할 수 있는 19F NMR(Fluorine Nuclear Magnetic Resonance, 불소 핵자기공명 분광법) 기술을 적용했다. 이어 각 아미노산의 농도뿐 아니라 서로의 연결 관계를 네트워크 형태로 분석한 결과,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혈액 속 아미노산 네트워크가 단계적으로 재편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고 KAIST 측은 전했다.
이러한 변화는 암이 성장하면서 몸 전체의 대사 체계를 새롭게 바꾸는 전신 대사 재프로그래밍(Systemic Metabolic Reprogramming, 암의 성장에 맞춰 몸 전체의 대사 체계가 다시 구성되는 현상)을 반영하는 핵심 특징으로 분석됐다.
특히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근육과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발린과 류신 등 분지사슬아미노산(BCAA, Branched-Chain Amino Acids)의 비율은 감소한 반면, 암세포가 DNA를 만들고 빠르게 증식하는 데 필요한 글리신과 세린의 비율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암이 자라면서 몸 전체의 아미노산 사용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글리신이었다. 암세포가 활발하게 사용하는 아미노산으로 알려져 있어 혈액에서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상대적 비중이 증가했다. 연구팀은 글리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호작용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도 확인했으며, 이는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몸 전체의 대사 체계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어 아미노산 네트워크 분석에서 얻은 연결 정보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컴퓨터가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예측하는 인공지능 기술) 모델에 적용해 대장암 환자의 재발과 전이 위험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팀이 개발한 분석 방법은 현재 병원에서 대장암 환자의 경과를 살필 때 널리 사용하는 혈액검사 지표인 암배아성항원(CEA, Carcinoembryonic Antigen)보다 재발과 전이 위험을 더 정확하게 예측했다. 또한 혈액 속 개별 아미노산의 양만 분석하는 기존 방법보다도 높은 예측 정확도를 보였다.
이는 혈액 속 아미노산의‘양'만 보는 기존 분석을 넘어 아미노산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변화하는지를 함께 분석해야 암의 진행 상태를 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혈액 속 아미노산 간 상호작용 네트워크, 이른바‘대사의 지도'를 새로운 혈액 기반 대사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다.
이지민 교수는 "이번 연구는 혈액 속 개별 아미노산의 농도가 아니라 아미노산 간 연결 구조를 함께 분석해 대장암이 몸 전체의 대사 체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처음 규명했다”며, "앞으로 혈액검사만으로 대장암 환자의 재발 위험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새로운 정밀의료 기술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KAIST 연구처‘석·박사 모험연구사업'에서 시작됐다. 의과학과 화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혈액 속 아미노산 네트워크를 이용해 암을 분석해 보자'는 융합 아이디어를 공동으로 제안했고, 이 아이디어가 연구과제로 선정되면서 세계적 연구성과로 이어졌다.
배충식 KAIST 총장은 "이번 연구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학문 간 융합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음을 보여준 KAIST다운 연구”라며, "KAIST는 앞으로도 학생과 연구자들이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창의적인 융합 연구를 적극 지원해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혁신기술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의과학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 이지연 학생과 화학과 박사후연구원 김주미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KAIST 이지민 교수와 김현우 교수, 서울아산병원 박은정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Advanced Science(Impact Factor=14.1)에 2026년 6월 9일 온라인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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