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사라진다
표현의 자유 침해 VS 악성댓글 증가
  • 2012-09-14
  • 김창수 기자, cskim@elec4.co.kr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3일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상의 악성댓글과 익명 명예훼손 등의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07년 실시됐다. 실명제가 폐지될 경우 인터넷 사용자가 늘고 트래픽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이버 공간의 오염이 급증할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하루 평균 이용자수 10만 명 이상 사이트의 게시판에 글이나 댓글을 쓰기위해 인적사항을 등록토록 한 제도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헌재는 표현의 자유를 사전제한하려면 공익의 효과가 명확해야 하지만 실명제 시행 후 명예훼손 등과 같은 불법 게시물과 악성댓글이 줄지 않았으며, 이용자의 신상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커 공익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인터넷업계는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에 반기고 있다. 인터넷에 많은 법적 규제를 들이대며 침해받던 표현의 자유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이나 신상 털기 등의 문제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기존 인터넷 실명제는 KT, 옥션, SK컴즈 등 대규모 해킹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개인정보 유출을 부추긴다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트위터, 페이스북 등 해외 인터넷사업자에는 법적 효력이 미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져 국내 인터넷 기업과의 역차별, 표현의 자유의 대한 과도한 제한, 보이스피싱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또한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해외 교포나 그 자녀는 한국 사이트의 접근이 원천 차단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일부 어린이 전용 사이트는 부모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도록 돼 있어 부모가 없는 어린이의 경우 가입조차 할 수 없었다.



당연한 권리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헌재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생태계를 왜곡시켰던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을 폐지해 다행”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이번 결정이 한국 인터넷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현행 규제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을 검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본인 확인 여부를 업계 자율에 맡기되 익명의 악성 댓글 등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강력히 처리하기로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박재문 네트워크정책 국장은 “명예훼손 발생 시, 구제 절차를 신속히 하도록 제도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며, 인터넷 실명제의 위헌 결정으로 효력을 잃게 된 관련 법조항의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헌재의 결정을 고려해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하는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허위사실 공표나 후보자 비방 등의 행위는 철저히 조사해 엄중 조치할 계획이다. 이밖에 청소년보호법 등 인터넷에서 본인 확인을 의무화하는 다른 법 영역에서도 이번 헌재 결정에 따른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업체의 관리 책임은 더욱 커졌다. 인터넷업체는 실명제 폐지로 신규 가입자가 늘어나는 것이 자율 규제로 책임이 돌아온 만큼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NHN 한종호 정책커뮤니케이션 이사는 “댓글 모니터링을 강화해 사용자간 신고제를 활성화시켜 나가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131개 사이트의 건전한 사이버 공간 구축을 위한 관리/감독이 필요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자체 모니터 인력을 늘려 여과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악성 댓글 난무
헌재의 판결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아직 성숙한 인터넷 문화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흑색선전과 허위정보 등이 범람한다면 사이버 공간은 혼탁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폐단을 차단할 제어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부분적으로 누리꾼에게 압박감을 주고, 사건 발생 시 수사를 통해 처벌하기가 용이했다. 또한 무분별한 퍼 나르기를 일정 부분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반면, 익명 뒤로 숨었을 때 초기 수사가 어렵고, 예방적 조치가 불가능하다. 이는 누리꾼의 자정 노력이 없다면 헌재의 결정은 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터넷주소(IP) 실명제, 건전한 인터넷 이용 캠페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등의 자율기구를 중심으로 한 규제, 악성 게시글 작성자에 대한 게시판 벌점제 운영 등이 필요하고, 방송통신위회는 불법, 음란, 폭력 등의 문제를 여전히 제재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SNS 계정과 연동돼 글을 올리는 방식은 누리꾼 스스로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거나 명예훼손 피해자의 관련 댓글 삭제 요청 시, 게시판 사업자가 소명이나 입증 자료 없이 능동적으로 글을 내려주는 등의 자율규제 방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인터넷실명제는 익명성을 무기로 악플이 남발되면서 연예인이 자살하는 등의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지난 2007년 7월 도입됐다. 특히 해킹 등으로 주민번호가 대거 유출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내년부터 실명제 적용 사이트 기준을 하루 방문자 10만 명에서 1만 명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역차별 논란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리려면 실명인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유튜브 등의 해외 서비스는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할 수 없어 역차별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2009년 방송통신위원회는 구글 유튜브 사이트에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려했지만 구글은 동영상 업로드와 댓글 기능을 차단했다. 또한 유튜브는 사용자 국적을 미국이나 일본, 전 세계 등으로 변경하면 본인 확인 없이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무시했다. 2009년 12월 애플 아이폰이 출시돼 본인 확인 없이 동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게 되자, 유튜브에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국내에서 유튜브 접속 시, 주소가 kr.youtube.com이었지만 www.youtube.com으로 변경돼 실명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개인의 불이익이 공익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
헌재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인터넷 실명제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고, 주민번호가 없는 교포나 외국인의 게시판 사용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불이익이 공익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 같은 문제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헌재는 실명제를 통해 불법 게시물이 줄지 않았으며, 설령 문제가 있는 글을 올릴 시에도 아이디/IP 주소 등으로 글을 올린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셋째,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로 인해, 국내 인터넷 이용자가 실명제 의무가 없는 해외 웹사이트로 도피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개인정보보호협의회는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에 적극 찬성했다. 한국개인정보보호협의회(이하 한정협)는 지난 8월 24일 성명을 통해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원칙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히고, 인터넷 실명제 폐지에 따른 사회적 폐단을 방지할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정협은“인터넷실명제는 비방, 허위사실 유포등의 댓글 남용 행위를 방지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언론과 시민사회로부터 개인정보 유출의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을 받아왔다”며“이번 헌재 결정이 지난 18일 시행된 개정 정보통신망법과 더불어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청신호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안방안
인터넷 실명제가 사라지게 됨에 따라 다양한 대응방안이 필요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상습적으로 악플이나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이용자에게 벌점을 부과해 한도를 넘기면 글 쓰는 기능을 차단하거나, 논란이 되는 글에는 앞머리에 반론을 넣도록 하는 등의 대안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실명제 대신 피해구제 절차를 신속하고 편리하게 처리할 실질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현재 온라인 게시판에 게재된 글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포털을 비롯한 인터넷 사업자는 해당 글을 보이지 않게 블라인드 처리를 한다. 하지만 글을 올린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면 다시 보여주고 이후에는 당사자 간에 소송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헌재 결정의 내용과 취지를 바탕으로 명예훼손 분쟁 처리 기능을 강화하고 사업자 자율규제 활성화 등 보완대책을 내놓겠다고 언급했다.



헌법재판소는 8월 23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5 제1항(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 ‘방송법 제100조 제1항 제1호(시청자에 대한 사과)’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 제도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써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있다”며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게시물을 올릴 수 없도록 한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본인확인을 위한 개인정보가 게시판 운영자에 의해 무기한 보관될 수 있어 개인정보유출 등을 야기할 소지가 많다”고 언급했다. 한편 본인확인 정보를 보관하는 기간은 ‘정보의 게시가 종료된 후 6개월’이지만 글의 게시가 종료되지 않는 한 운영자가 개인정보를 계속 보관해 부작용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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