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노트] 이 겨울, 식물이라는 종합과학 선물세트
  • 2022-12-01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겨울은 벌거숭이 나무의 계절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잎을 떨군다. 상록수처럼 잎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나무도 있지만 대부분 잎을 제거하여 양분을 아낀다. 봄을 기약하는 나무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시린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뻗은 나무 가지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런 생각도 든다.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한편으로 일정한 패턴으로 질서정연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 나뭇잎에 가려져 있던 가지와 줄기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심지어 저 혈관처럼 이어진 가지들이 나무를 이루는 화학 성분의 분자식 구조를 닮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수학이다

필자의 상상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식물에도 프랙탈(Fractal) 이론이 적용된다. 이는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유사성 개념을 기하학적으로 푼 구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자연계의 리아스식 해안선, 동물혈관 분포형태, 나뭇가지 모양, 산맥의 모습 등 우주의 모든 것이 결국은 프랙탈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식물에서 프랙탈 형태가 많은 것은 자기복제 형태로 다음 세대에 유전 정보를 넘기는 과정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꽃 양배추와 같은 식물, 잎의 프랙탈 구조는 해안선과 같은 구조로 잎 경계선이 복잡성을 띄며 광합성이 가능한 잎의 표면적을 넓게 하는 이점이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식물은 철저히 계산적인 녀석이다. 수학시간에 배웠던 피보나치 수열( Fibonacci sequence)이라는 게 있다. 첫 번째 항의 값이 0이고 두 번째 항의 값이 1일 때, 이후의 항들은 이전의 두 항을 더한 값으로 이루어지는 수열을 말한다. 긴장하지 마시라. 수열 공부를 하자는 게 아니라 식물이 이 수열식을 따른다는 말을 하려던 참이다.

흥미로운 점은 전체 식물의 90% 이상에서 피보나치 수열의 꽃잎과 잎차례, 씨앗의 배열을 볼 수 있다. 꽃 봉오리 상태에서 암술과 수술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꽃잎의 수와 최대한의 햇빛을 받기 위한 잎차례 개수가 이 수열을 따른다. 

양자역학이다

식물의 광합성은 양자역학을 증명하기도 한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식물의 광합성은 빛 에너지가 전기에너지를 거쳐 화학에너지로 저장되는 과정이다. 

광합성 과정에서 엽록소는 엽록체 막에 깔때기처럼 배열되어 있어 흡수한 빛 에너지를 가운데 반응중심으로 모으고 이렇게 모인 에너지를 포도당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문제는 엽록소가 빛 에너지를 모아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95%가 넘는다는 사실에 의문이 많았다. 

엽록소에서 흡수한 전자가 단계적으로 이동해 반응중심에 도달한다는 기존 매카니즘으로는 이러한 고효율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2007년 미국 버클리대학 화학과 글레이엄 플레밍 교수팀은 실험을 통해, 빛 에너지를 흡수한 전자가 양자 결맞음에 따라 파동처럼 엽록소 전체 깔때기에 퍼져 순식간에 반응중심으로 흘러들어간다고 증명했다. 다시 말해, 빛 알갱이 한 개가 동시에 두 개의 엽록소를 들뜨게 하여 광합성 반응이 신속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화학이다

식물은 화학 그 자체이다. 식물은 화학물질로 의사소통한다. 식물 내부와 다른 식물들에게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곤충 및 동물들과 의사소통하여 정보를 수집 또는 전파한다. 지구상에는 약 1,200만~3,000만종 종의 화학물질이 존재하며 이중 95%가 탄소화합물이고 인간이 합성한 물질 20만종을 제외하고 대부분 식물이 합성한 탄소화합물이다. 이를 통해 내부의사와 외부의사를 전달하고 해충이 공격할 때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처럼 겨우내 앙상하게 볼품없이 서 있는 나무 하나하나가 종합과학 선물세트이다. 필자가 소개한 내용을 담은 전시회(식물X과학)가 지금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열리고 있다. 비록 이론 설명이 대부분이지만 함께 볼 수 있는 동영상도 마련돼 있어 이해를 돕는다. 전시회도 전시회지만 겨울을 나고 있는 수목원 나무 식물들을 보는 즐거움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명징한 겨울 공기 사이에서 전해지는 나무들의 고요한 속삭임이 들릴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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