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부 과학책 읽기] ① 날마다 천체 물리,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긴 보는데
  • 2019-02-07
  • 글쓴이: 집사부


집사부 과학책 읽기’ 코너는 ‘집’‘사’ 놓고 안 읽은 ‘부’담스러운 과학책 읽기’를 줄인 말로 예능 프로그램 이름에서 가져왔다. 사부가 나오는 무협영화 줄거리처럼 원한→고난→수련→복수, 라는 패턴을 차용하여 과학책을 읽는다. (글쓴이 집사부 붙임) 



저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 / 역자 홍승수 / 사이언스북스


제1장: 원한

여기, 디저트 가게에서 ‘핫 코코아 나이트캡’을 주문하는 한 사내가 있다. 사내는 음료 위에 휘핑 크림을 올려달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음료에는 휘핑 크림이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이를 따졌고 종업원은 휘핑 크림이 가라앉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내의 상식으로는 휘핑 크림은 밀도가 낮아서 모든 액체에 뜨게 마련이었다. 사내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휘핑 크림의 부재에 관해 두 가지 가능성을. 하나는 자신이 주문한 코코아에 휘핑 크림 올리기를 깜빡했든가, 나머지 하나는 범우주적으로 성립하는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 무슨 이유에서든 이 가게에서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에 설득당하지 않은 종업원은 사내 앞에서 휘핑 크림을 음료 위에 올리는 실험(?)을 강행했다. 컵에 넣은 휘핑 크림 덩이가 한두 번 가라앉았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뜨거운 코코아 위에 편안하게 자리잡는 게 아닌가.

이 에피소드는 ‘날마다 천체물리’의 저자인 닐 디그레이스 타이슨이 자신의 책에 소개한 이야기다. 닐 타이슨은 2014년 우주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진행한 대중을 위한 과학 글쓰기의 귀재로 평가 받는 천체물리학자이다. 두꺼운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사 놓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면, 과학책 분야에서는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들 수 있는데, 그와 닐 타이슨의 인연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1975년 어느 날,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이 자신에게 편지를 썼던 흑인 소년 닐 타이슨을 만나 천문학자의 꿈을 실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은 닐타이슨에 앞서, 이미 30여 년 전에 오리지널 코스모스 다큐로 전 세계인에게 우주에 대한 동경심을 심어 놓은 바 있다. 

아무튼 닐 타이슨은 날마다 천체 물리의 서문에 ‘두툼한 책을 읽기에는 너무 바쁘지만 늘 우주를 그리워하는 모든 현대인을 위하여’라고 추천하며, 바쁘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을 위로했다. 이어 그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에게 묻곤 한다. 어두운 저 하늘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이인가? 이 세상의 작동 원리와 작동 기제는? 우주에서 나는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 모두가 자신의 근본을 묻는 질문들이다.” 

그래서 닐은 이 책을 펼쳐 볼 것을 권한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우주에 대한 갈망은 좀 더 깊어지고, 좀 더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집사부 필자는 그러한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바쁘지만(?) 이 조그만(판형이 작다) 녀석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주에 대한 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밀도가 작은 휘핑 크림은 뜨거운 액체에 가라앉지 않고 뜰 수밖에 없는 ‘물리학의 기본 법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었다. 이는 집사부가 이 새로운 꼭지를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점을 굳이 사족으로 붙인다. 

제2장: 고난

저자는 이 책의 제1장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눈치 빠른 이는 알 것이다. 우주의 시작을 빅뱅으로 시작하려면 ‘위대하다’는 단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거의 140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주가 이 문장 끝에 찍힌 ‘마침표’의 1조분의 1보다 작은 부피 안에 온통 다 뭉쳐 있다는 놀라운 발견에 마주서면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는 천체 물리학자들도 대답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다만 과학자이며 종교를 말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주에 시작이 있었으며 진화를 계속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의 기원을 140억 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의 순간에서부터 50억 년 이전에 폭발한 질량이 큰 하나의 별 내부에서 일어났던 열핵 융합 반응으로까지 추적해 올라갈 수 있다. 별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에서 비롯한 생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우주 자체의 시작과 진화를 캐물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우주를 이해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모순이던가. 
 

제3장: 수련

우주의 온도와 시간을 짚어낼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는 펄펄 끓던 초기 우주에서 떠돌던 강렬한 빛의 화신이다. 이 스펙트럼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우주 정보를 살펴 볼 수 있는데, 이를 발견한 펜지어스와 윌슨은 미국 최대 전화회사 AT&T 사의 연구 부서인 벨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었다. 이에 대한 공로로 1978년 노벨상을 받았는데, 이들이 처음에 겨냥했던 목표는 우주배경복사가 아니라 회사의 새로운 통신용 채널을 여는 것이었다니, 우연의 역사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나보다.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CMB)의 경우,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열쇠로, 저자는 “현대 우주론은 CMB라는 거울을 확보함으로써 전자와 광자의 산란이 드리운 커튼이 걷히던 시기 이전과 이후를 함께 알아볼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그리고 5장과 6장에서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에 대해 다룬다. 그 동안 직접 검출을 거부해 온 암흑 물질은 오늘날에도 우주론의 핵심 난제로 남아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암흑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정체를 모른다고 말한다. 또한 역시 정체를 모르는 암흑 에너지가 일종의 양자 효과에서 비롯됐다는 단서를 제공한다. 인류 지성사의 금자탑이라 할 양자 물리학이 우리에게 보여준 놀라운 업적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암흑 에너지의 정체를 가상 입자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책 중반(7장)에 다다라 나온 주기율표 이야기는 반갑다. 학교 다닐 때 배우던 층층이 쌓인 상자 모양의 주기율표를 무조건 외우던 기억이 있기 때문일까. 사실 주기율표는 현재까지 알려진 모든 종류의 원소와 앞으로 우주에서 발견될지 모르는 원소들의 화학적 성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도표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원소의 유래를 옛날 이야기하듯 펼쳐 놓는다. 예를 들어, 원자핵에 양성자가 달랑 하나들어 있는 ‘수소’는 우주 대폭발의 순간에 전부 만들어진 원소로 우리 몸의 3분2이상을 차지하며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90% 이상이라고 말한다. 이들 수소 원자핵들이 태양의 중심핵에서 마구잡이로 고속 충돌하면서 빚어져 만들어진 원소가 ‘헬륨’이다. 그래서 태양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헬리오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밖에 탄소, 소듐, 타이타늄, 갈륨 등의 다양한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설명한다.  

구형 천체에 숨겨진 중력의 역할과 빛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모르는 세계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책의 후반부에는 우리가 사는 행성과 우리가 모르는 행성의 비밀을 푼다. 

제4장: 복수 

닐 타이슨은 책의 마지막 장이자 결말을 ‘우주적으로 보고 우주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으로 대신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지구를 우주적 관점과 시각에서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로 ‘우주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하지만 모두 저자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2000년 뉴욕시에 새로 지은 천체 투영관 에 ‘우주로의 패스포트’라는 프로그램을 상영했다. 관람객은 프로그램에서 우주의 끝까지 가는 긴 여정에 오르게 된다. 이 여정은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 행성들을 지나고, 은하의 세계로 접어들고 급기야 하나의 점으로 축소되는 은하를 보며 끝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고 한 심리학자가 저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느끼게 하는 것들에 관한 연구’를 위해 프로그램을 관람하기 전과 후에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인지하게 되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는 이 프로그램이 자신의 하찮음과 무력함을 가장 극적으로 느끼게 해준 작품으로 이해한 것이다. 프로그램의 의도는 인간이 살아 있음을, 영적인 존재임을, 그리고 전 우주와 깊숙이 연계돼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이 과도한 자만심에 사로 잡혀 있었음을 깨닫는 계기였다고 반성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우주적 시각은 사물의 궁극적 근원을 건드리는 지식에서 성장하며, 언제나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해서 예외적 아이디어에서도 가치를 찾아내게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에, 집사부는 다만 하늘을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이 낮에는 뿌연 하늘이고 밤에는 불빛에 가려진 까만 하늘뿐이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날마다는 아니지만, 가끔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저 광활한 우주에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은 보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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