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노트] 못 박기 게임과 부끄러움에 대하여
  • 2019-08-09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부끄러움을 모르면 반성을 모르고, 반성이 없으면 추악한 역사는 되풀이될 것"

최근에야 필자는 ‘못’ 박기 게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간판 역할을 하는 작은 현수막에 ‘추억의 못 박기 게임’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니 예전에도 있었다는 말인데, 그게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술집이 몰린 골목을 지날 때 본 풍경이었다. 커다란 나무통 뒤에 선 건장한 사내가 망치와 못을 들고 취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말 그대로 돈을 내고 못 박기에 도전하면 된다. 단 정해진 횟수 안에 끝까지 박아야 선물이 주어진다. 한방에 박으면 선물이 가장 크고, 3번 안에 다 박지 못하면 꽝이다. 세상에 그런 게임이 있다는 것을 보고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이 일어 잠시 지켜봤다. 고객(?)은 주로 데이트를 나온 젊은 남녀들이다. 남자가 호기롭게 망치를 들고 못을 박지만 대부분 3번 안에 못을 다 박지 못한다(그래서 그런 장사를 하겠지만).

뜻밖의(?) 낭패를 당한 순간 연인을 보고 멋쩍은 미소를 지은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대전료를 꺼내 재도전에 나선다.
이번엔 마음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나서지만 다시 실패. 주인은 곧장 여자에게 (당연히 돈을 받고) 도전을 권한다. 망치를 휘두를 수 있는 횟수(6방)를 더욱 늘려주지만 성공할리 없지않은가(그래서 장사라니까). 주인의 돈 통만 배가 부르다. 못 박기가 제법 흥미로운지 구경하는 여자들은 남자의 등을 떠민다. 못 박기에 실패한 자신에게 부끄러운지, 연인에게 부끄러운지, 괜한 돈을 날려서 부끄러운지 술을 한잔 더한 사람처럼 얼굴이 금새 불콰해진 남자와 여자가 다시 술집 골목으로 사라진다. 못 박기, 그게 뭐라고.
 

부끄러움을 목숨과 바꾼 아이아스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중 한명이었다. 그는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장사였다. 천하의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뛰어난 무장이라고 불리었다. 당연히 트로이 전쟁에도 참전해 적장 헥토르와도 대결한다. 일대일로 하루종일 싸워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니 정말 대단한 장수였던 모양이다. 문제는 아군이자, 싸움의 신 아킬레우스가 죽은 다음에 일어났다. 그의 방패와 갑옷 등 유품을 서로 가지려고 트로이 전쟁의 또 다른 영웅인 오디세우스와 설전을 벌였단다

오디세우스와 비교해서 힘으로는 지지 않지만 머리가 좀 딸렸던 아이아스는 결국 아킬레우스의 유품을 빼앗기고 만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에 굉장히 분개한 아이아스를 진정시키려고 나선 게 전쟁의 신 아테나였다. 아이아스를 미치게 만들었고, 신의 계략에 빠진 아이아스는 들판의 양떼를 오디세우스와 그리스 장수들로 착각하여 몰살시킨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아이아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보고서 몹시 부끄러워했고, 그것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땅에 세워놓은 칼에 몸을 던진다. 맞대결을 펼쳤던 헥토르가 준 선물이었다. 아킬레우스의 유품, 그게 뭐라고.

부끄러움의 대명사, 사무라이

반면, 명예를 부끄럽게 하는 행위를 수치로 여긴다면서, 알고보면 부끄러움과 수치 그 자체가 된 경우도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를 일컫는 말이다. 명예와 충성의 대명사, 사무라이의 이미지는 대개가 허구이다. 부러지기 쉬운 탓에 칼을 두 자루나 차고 다녀야 했던 사무라이는 주군에게 충성하는 대신에 막대한 특권까지 누린 집단에 불과하다.

그 무법의 특권 앞에 일반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무라이에게 이유없이 조아려야 했고, 여기에서 일본인의 과도한 친절이 비롯됐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철저히 굽히고 약점을 보이면 기습공격을 서슴없이 자행한 사무라이의 습관은 전쟁에서의 비겁한 기습공격으로 되풀이된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멀리하는 것은커녕 오히려 부끄러운 실체가 바로 사무라이이다.

최근 일본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화학 소재들을 수출규제 품목으로 정해 시끄럽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경제 침략으로 간주하고 대응책을 부심하고 있다. 강제 징용 판결을 빌미로 한반도의 평화조차 가로막으려는 저의가 뻔하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감추고, 심지어 부끄러움 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고 일본을 바라보게 된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반성을 모르고, 반성이 없으면 추악한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죽은 아이아스는 차라리 꽃(히아신스)으로라도 태어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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