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부 과학책 읽기] ②뇌, 뇌섹남도 모르는 뇌 이야기에 빠지다
  • 2019-03-11
  • 글쓴이: 집사부

집사부 과학책 읽기’ 코너는 ‘집’‘사’ 놓고 안 읽은 ‘부’담스러운 과학책 읽기’를 줄인 말로 TV프로그램 이름에서 따왔다. 글의 구성도 무협영화 줄거리처럼 원한→고난→수련→복수, 라는 패턴을 차용하여 과학책을 읽고 정리한다(글쓴이 집사부 붙임). 


저자: 뇌 (렉처 사이언스) / 강봉균 외 / 휴머니스트

원한: 무엇이 끌렸나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정우성)은 잘 생겼고, 여주인공(손예진)은 예쁩니다. 그런데 젊고 예쁜 여자 주인공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이들의 사랑이 더 애틋해진다는 흔한 멜로 영화의 공식을 따릅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자가 요양원에 면회를 갔는데, 여전히 예쁜 여자 곱게 차려입고 맑은 눈으로 “누구세요?‘라고 말합니다. 알츠하이머가 심해져 남편의 얼굴마저 잊은 것. 하지만 신경과 전문의는 중증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예쁠 수 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지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으므로 화장도 안하고, 초점이 없어 눈매가 퀭하다는 것입니다. 


"알츠하이머가 심해져 남편의 얼굴마저 잊은
영화 속 손예진은 예쁠 수가 없다. "



영화 <봄날은 간다>도 유사한 예가 있습니다. 중증 치매 환자인 남자의 할머니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늘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립니다. 근데 떠나간 여자를 잊지 못해 울고 있는 손자에게 다가와 ”떠나간 버스랑 여자는 잡는 게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역시 전문의 입장에서는 중증 치매환자가 손자의 상황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그런 고급스러운 유머를 던질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렉처 사이언스 ‘뇌’(모든 길은 뇌로 통한다)라는 책의 ‘영화 속에서 뇌과학을 보다’ 강의(6강)를 맡았던 김종성 박사는 이처럼 영화는 흥미롭지만 기본적으로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 뇌질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영화가 많다고 말합니다. 

영화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똥을 보고 혐오와 회피 반응을 보이는 것도 ‘뇌’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 책 ‘진화, 뇌를 여는 열쇠’(9강)라는 주제로 발표한 전중환 박사는 “똥에는 각종 전염성 병원균이 있는데, 똥을 보고 역겨워하며 피하는 것은 그 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 가장 적절한 반응”이라고 설명합니다. 진화 심리학을 연구하는 전 박사는 똑같은 환경이라도 인간과 똥파리는 전혀 다른 반응을 유발하는 이유로 ‘뇌’의 개입을 말합니다. 즉 생존과 번식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이 두뇌의 역할이라고 지적합니다. 

고난: 어디가 걸리던가 

이처럼, 뇌에 관한 흥미로는 이야기, 아홉 편을 모은 이 책은 우리나라 뇌과학의 최고 석학들이 참여해 만들어졌습니다. 재단법인 카오스는 2014년 말 ‘과학ㆍ지식ㆍ나눔’을 모토로 강연, 지식콘서트, 출판 등을 통해 과학지식을 대중에게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이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뇌’는 첫 주제 ‘기원’ 다음에 나온 책으로, 이후에 빛, 지구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 책의 각 주제만 봐도 흥미롭습니다. ‘뇌, 신비한 세계로의 초대’(1강), ‘인간의 뇌는 과연 특별한가’(2강), ‘기억찾기’(3강), ‘뇌를 읽다, 그리고 마음을 읽다’(4강), ‘자아의 탄생’(5강), ‘착각하는 뇌’(7강), ‘시냅스, 생쥐, 그리고 정신질환’(8강) 등 목차만 훑어 봐도 구미가 당깁니다. 각 주제는 실제 강연을 옮긴 내용이라 저자가 내 앞에서 말하는 듯 전달력이 좋지만, 알아듣기 쉽다고 전부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뇌과학을 설명하는 수많은 용어와 거기에 연관되는 주제가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뇌에 대해 아는 게 너무도 적다.
우주의 96% 정도가 우리가 모르는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듯이...



이를테면 첫 강연에서 듣게 되는 뇌의 실체 설명부터 그렇습니다. “뇌와 신경계의 기본 단위는 신경세포인 뉴런입니다. 뉴런의 생김새는 일반 세포와는 달리 외계인처럼 생겼는데, 머리처럼 생긴 것이 세포체이고 머리에 촉수처럼 달린 것이 수상돌기, 세포체에서 길게 뻗어나온 축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신희섭).” 첫 문장부터 등장하는 뉴런, 세포체, 수상돌기, 축삭 등의 단어가 소환되는데 생물시간에 외우던 추억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 합니다. 

하물며, 좌뇌와 우뇌에서 시작해 간뇌, 소뇌, 대뇌, 뇌간에 이르고 다시 대뇌는 변연계와 대뇌피질로 이루어져 있고, 간뇌는 시상, 시상하부, 뇌하수체 등으로 구성된다는 말로 확대된다고 해도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름은 한번쯤 들어봐야 계속된 강의에서 아는 척(착각하는 뇌)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용어를 모른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인간은 뇌에 대해 아는 게 너무도 적다는 사실입니다. 우주의 96% 정도가 우리가 모르는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수련:: 어떻게 읽었나

이처럼 뇌에 대해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질문이 무수히 많다하지만, 거기에서 멈추면 그것도 인간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미국 앨런 뇌연구소가 시도한 뇌지도(Allen Brain Atlas) 구축도 그 중 한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뇌의 관계를 알려면 뇌 영상기술, 신경연결체학의 발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더 정밀한 뇌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뇌 영상의 정밀화를 위해서는 밀리미터 단계에서 더 나아간 나노 단위의 마이크로스케일 단계까지 발전해야 자세한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김경진). 특히 나노 단위의 뇌지도를 그리려면 자동화된 전자현미경이 필요한데, 전자현미경의 이미지를 인식해내는 알고리즘을 연구하려면 인공지능(AI) 기술도 필요합니다. 우리 뇌 속의 1000억 개 신경세포가 가지고 있는 커넥션, 즉 신경회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커넥톰’은 이들 신경회로를 파악하여 지도를 만드는 거대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 뇌 속의 1000억 개 신경세포가
가지고 있는 커넥션, 즉 신경회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커넥톰’이 이슈



이처럼 복잡한 구조와 세계를 가진 ‘뇌’이지만, 뇌 정신질환과 뇌 기능은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라고 말합니다(김은준). 자폐를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사회적인 대상에 대한 인지와 행동을, ADHD를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주의 집중에 대한 기제를 이해하게 됩니다. 뇌 정신질환 연구는 궁극적으로 정상적인 뇌 기능을 이해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김은준 박사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데 증상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막연하게 두려운 마음이 들고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정신분열증이라고 하는 정신질환, 조현병은 뇌 신경세포들의 연결성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권준수). 질병의 기제가 밝혀져서 정신질환이 신체질환과 다른 특별한 질환이라는 낙인이 없어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연구자들의 희망입니다. 

참고로, 정신분열증은 일본에서 번역한 말로 정신질환에서 잘못된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해서 현악기의 줄과 관련된 은유적인 표현으로 조현(調絃)병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현악기(絃)를 조절(調)하듯이 신경세포의 연결이 너무 느슨해도 안 되고 너무 타이트해도 안 된다라는 의미에서 병명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복수: 무엇을 얻었나

‘뇌’ 강의책을 읽다보면 생소했던 뇌과학의 숲을 보게 됩니다. 뇌의 신경세포와 그를 연결하는 시냅스의 수가 우주의 별 개수와 같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숲을 봤으니, 나무를 보는 일은 독자 개개인의 몫이겠지요. 강의록을 발판삼아 연관되는 책을 하나씩 찾아보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집사부 필자의 경우, 각 강의 끝에 함께 묶은 질의응답(Q&A)이 알토란 같은 재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전문가들 간의 질의응답은 물론 청중들의 번득이는 질문과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변은 덤입니다. 그 중 몇 가지 질의응답을 지면에 옮기며 집사부 과학책 읽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Q. 학습기반의 인공지능인 알파고에 감정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을까요?
A. (신희섭) 많은 사람이 알파고가 감정까지 생긴다면 더 두려울 것이라고 하지만 저는 다르게 봅니다. 감정이 없으면 사실 더 무서운 거죠. (중략) 만일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도 이해할 정도가 되면 알파고가 이세돌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좋아할지도 모르죠. 그보다 훨씬 전에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죠. (중략)알파고가 자기 감정은 없어도 상대가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는 것이 더 무섭지 않을까요?

Q. 기억의 저장 기간에 어떤 있나요? 기억을 분류한 기준이나 과정이 존재하나요? 
A. (강봉균) 경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중략)단백질 합성이나 시냅스 구조가 단단하게 이루어지면 소위 해마에서 신피질로, 안전한 금고로 가서 기억이 저장되죠. 그러며 오래 가는 것이고 벼락치기 공부를 한 경우 신피질로 못 넘어간 것이죠. 그래서 해마에 머물다가 몇 주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Q. 인간이 뇌 중에서 10퍼센트 미만의 극히 일부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요?
A. (구자욱)  5%만 사용한다, 10%만 사용한다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좀 신앙 같아요. 뇌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무의식의 순간에도 계속 일하고 있는 부위가 있어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하는데, 이것이 기본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어떤 신경 처릴 할 때는 그 뇌 부위의 활성화가 줄어들고 다른 부위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c)스마트앤컴퍼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인공지능  

  • 100자평 쓰기
  • 로그인

세미나/교육/전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