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노트] 아, Story! 스토리 있는 기술 개발을 위하여
  • 2019-02-08
  • 신윤오 기자, yoshin@elec4.co.kr

중국 삼황오제의 제왕 중 한명이자 신(神)인 제곡 고신씨의 딸, 항아(姮娥)의 미모는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녀는 고대의 궁신인 예의 아내이자 선녀였지만 남편이 천제의 아들을 죽이는 죄를 짓자, 남편과 함께 지상으로 쫓겨났다. 요샛말로 신계에서 인간계로 내려와 인간이 된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던 항아의 남편 예는 어느 날 곤륜산의 서왕모에게서 불사의 약을 받아왔다. 이 약은 둘이 반씩 나누어 마시면 불로장생하고, 혼자 모두 마시면 다시 신선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 한다. 평소 자신 때문에 신의 직위를 박탈당한 아내의 처지를 슬퍼했던 남편은 부인 항아에게 불사의 약을 혼자 마시게 했다. 그러자 사달이 났다. 옥황상제는 남편을 두고 저 혼자 신선이 됐다는 이유에서 항아를 달로 유배를 보내버린 것이다(항아가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달의 정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항아는 계속 달에 남으면서(혹은 갇히면서) 달의 여신이 되었다. 달에 있다는 토끼와 계수나무와 함께.
 

▲달의 뒷면에 착륙한 창어4호 착륙선(왼쪽)과 탐사차량 위투2호. (중국국가항천국 웹사이트 캡처)
 
지난 1월 3일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에 착륙한 중국의 달탐사선 ‘창어(嫦娥)’는 동아시아에서 부르는 이 달의 여신 ‘항아(혹은 상아)’의 중국어 발음이다. 지난 2007년 10월 중국 쓰촨성 시창 위성발사기지에서 쏘아올린 달 탐사위성 ‘창어1호’가 발사됐고, 이번에 ‘창어 4호’가 달의 이면에 발을 디디면서 중국은 우주개발의 역사를 다시 썼다.

1969년에 아폴로 11호가 사람을 싣고 달에 착륙하기도 했지만, 달의 뒷면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달은 지구와 자전과 공전시간이 똑같아 지구에서는 달의 한쪽 면만을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달의 뒷면은 통신 문제 때문에 탐사선를 보내기 힘들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 통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어4호 발사에 앞서, 췌치아오(鵲橋:오작교) 중계 위성을 띄웠다.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줬다는 그 까치다리(오작교)가 지구-달 중력 균형점에 자리잡고 지상 관제소와 창어4호를 통신 중계하여 원격 조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달 표면에 착륙한 창어 4호가 내려놓은 탐사 로봇 이름은 옥토끼 '위투(玉兎) 2호'다.

이처럼 중국의 우주 개발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필자가 인상 깊게 본 대목은 달 탐사선의 이름과 얽힌 ‘스토리’이다. 항아(창어)를 찾아 간 길을 오작교(췌치아오 중계위성)가 다리를 놓아주고 달에 옥토끼(위투)를 풀어놓는 이야기 말이다. 중국은 이미 2016년에 발사한 양자통신위성 이름에 ‘묵자호(墨子號)’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국의 사상가 묵자가 평화를 사랑하는 겸애의 철학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과학자이자 발명가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이런 작명이 ‘센스(Sense)’를 넘어 ‘센세이션(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홀로 있는 비운의 여신 창어를 찾아 달에 간다”

시선을 우리나라 우주개발로 돌리면 중국에서 느꼈던 감동은 반감된다. 90년대 초반부터 우주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한국은 1992년에 비로소 위성을 발사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우리별’ 1호이다(발사체와 위성의 대부분을 수입했기에 ‘남의별’이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이어 실용 위성다운 위성을 쏘아 올린 것이 1999년 ‘아리랑’위성이고, 2010년에 ‘천리안’ 1호를 발사하게 되었다. 2013년에는 ‘나로호’(전남 고흥군 나로도란 섬에 발사기지가 있다)도 등장한다.

중국의 우주 개발이 무조건 대단하다고 치켜세울 생각도 없다. 하지만 중국의 ‘스토리’있는 우주 개발에 남다른 질투가 느껴진다. 중국인들이 창어호를 달로 보낼 때 “홀로 있는 비운의 여신 창어를 찾아 달에 간다”고 말한 심정에서 꿈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화에도 존재하는 대별왕, 소별왕(달의 신)이 달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고 ‘바리공주’나 ‘강림’ 스토리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물론 필자는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도 국산 발사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실패를 딛고 위성을 우주로 보낸 영민한 한국 과학자에 경의를 표한다. 아쉬운 것은 ‘스토리’ 있는 우주 개발이 더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스토리 있는 개발이 ‘히스토리(History)’를 만들어낼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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